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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1편인 너무 길어 2편으로 나눴습니다. 

7. 하늘 위에서의 학살,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 사건 (1987년)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전 세계의 이목이 대한민국으로 집중되던 시기, 

북한은 올림픽 개최를 방해하고 남한 사회에 극심한 혼란을 주기 위해 무고한 민간인 여객기를 대상으로 전대미문의 테러를 감행합니다.
1987년 11월 29일 발생한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입니다.

이라크 바그다드를 출발해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를 거쳐 서울로 향하던 KAL 858편 여객기가 인도양 상공을 비행하던 중 갑자기 실종되었습니다.
조사 결과, 이 비행기는 북한 대외정보조사부 소속 공작원인 김승일과 김현희에 의해 폭파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들은 일본인 부녀로 위장하여 아부다비에서 비행기에 탑승한 뒤, 좌석 위 선반에 라디오와 술병으로 위장한 시한폭탄과 액체 폭발물을 놔둔 채 중간 기착지에서 내렸습니다.
이들이 내린 후 비행기는 인도양 상공에서 폭발하여 공중 분해되었고, 탑승하고 있던 승객과 승무원 115명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특히 사망자 대부분은 중동 건설 현장에서 밤낮으로 땀 흘려 일하다가 그리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던 우리 나라의 성실한 근로자들이었습니다.

국제사회는 민간 여객기를 대상으로 테러를 저지른 북한을 강하게 규탄했고,
미국은 이 사건을 계기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습니다. 자국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아무 죄 없는 민간인 115명의 목숨을 무참히 빼앗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반인륜적 범죄입니다.


8. 동해안을 뒤흔든 긴장감, 강릉 지역 무장공비 침투 사건 (1996년)


1990년대에 들어서도 북한의 침투 도발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1996년 9월 18일 새벽,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해안가에서 꽁치잡이를 하던 택시 기사님이 바다에 좌초된 이상한 물체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북한의 상어급 잠수함이었습니다.
북한 정찰국 소속의 승조원과 안내원, 그리고 최정예 특수부대원 등 총 25명이 잠수함을 타고 우리 해안에 침투했다가, 복귀 과정에서 잠수함이 스크류에 해조류가 감겨 좌초되자 잠수함을 버리고 괘방산 일대로 도주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군은 즉각 진돗개 하나를 발령하고, 강원도 일대에 거대한 포위망을 구축하여 수색 및 소탕 작전에 돌입했습니다. 이 소탕 작전은 무려 49일 동안이나 지속되었습니다. 산악 지형이 험한 강원도 일대에서 숨바꼭질하듯 벌어진 교전 속에서 침투한 공비 25명 중 13명이 교전 중 사살되었고, 11명은 내부 요원에 의해 처형된 채 발견되었으며, 1명(이광수)은 생포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 군인 12명과 예비군 1명, 경찰 1명, 그리고 작전 지역 인근에 살던 무고한 민간인 4명 등 총 18명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강원도 전역에 통행금지가 내려지고 주민들이 공포에 떨었던 이 사건은, 휴전선 후방 지역이라 할지라도 언제든 북한의 특수부대가 침투할 수 있다는 안보 불감증에 큰 경종을 울렸습니다.



9. 서해 바다의 첫 승리, 제1연평해전 (1999년)


1999년 6월, 꽃게잡이 철을 맞아 서해 북방한계선(NLL) 해역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습니다. 6월 7일부터 북한 경비정들이 의도적으로 우리 NLL을 침범하기 시작하더니, 우리 해군의 퇴거 요구를 무시하고 일주일 넘게 영해 침범을 반복했습니다.
1999년 6월 15일 오전, 북한 경비정들이 또다시 NLL을 넘어와 우리 해군의 고속정에 고의로 충돌 기동을 감행했습니다. 우리 해군이 밀어내기 기동으로 단호하게 대응하자, 북한 경비정이 먼저 25mm 기관포로 선제 기습 사격을 가해왔습니다.
이에 우리 해군의 초계함과 고속정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압도적인 화력으로 즉각 대응 사격을 퍼부었습니다. 단 14분간 벌어진 치열한 교전 결과, 북한군은 어뢰정 1척이 침몰하고 경비정 5척이 크게 파손되었으며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내고 북으로 도망쳤습니다. 반면 우리 해군은 고속정 몇 척이 일부 손상을 입고 장병 9명이 경상을 입는 데 그쳐, 완벽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 해군이 북한의 서해 NLL 무력화 시도를 강력한 의지와 압도적인 전력으로 좌절시킨 첫 번째 정규 해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0. 월드컵 함성 속의 비극, 제2연평해전 (2002년)


온 나라가 "대~한민국!"을 외치며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기쁨과 축제 분위기에 도취해 있던 2002년 6월 29일 오전, 서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다시 한번 총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제1연평해전의 패배를 설해하려던 북한이 치밀하게 준비한 기습 도발, '제2연평해전'입니다.
북한 경비정 2척이 NLL을 침범해 내려왔고, 우리 해군의 고속정 참수리 357호와 358호가 즉각 출동해 차단 기동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북한 경비정이 아무런 전조도 없이, 참수리 357호를 향해 85mm 탱크탑포와 기관포로 선제 기습 조준 사격을 가했습니다.
조준 사격을 정통으로 맞은 참수리 357호는 순식간에 조타실이 파괴되고 지휘관인 윤영하 소령이 현장에서 전사하는 등 극심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장병들은 피가 낭자하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포탑을 잡고 반격을 개시했습니다. 인근에 있던 우리 해군 함정들이 합세해 집중 포격을 가하자, 북한 경비정은 화염에 휩싸인 채 북으로 퇴각했습니다.
이 교전으로 인해 참수리 357호는 예인 도중 침몰했고, 정장 윤영하 소령을 비롯해 한상국 상사, 조천형 상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등 아름다운 청춘을 가진 6명의 자랑스러운 장병들이 전사했습니다. 또한 19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축제 열기에 묻혀 이들의 희생이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지만, 목숨을 바쳐 서해 영해를 지켜낸 이들의 숭고한 희생은 대한민국 역사에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11. 백령도 해상의 눈물, 천안함 피격 사건 (2010년)


2010년은 대한민국 안보 역사상 가장 가슴 아프고 참혹한 도발이 연이어 일어난 해입니다. 그 첫 번째 비극이 2010년 3월 26일 밤 9시 22분, 백령도 남서쪽 약 1km 해상에서 발생했습니다.
우리 해군의 제2함대 소속 초계함인 'PCC-772 천안함'이 정상적인 경계 임무를 수행하던 중,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선체가 두 동강 나며 순식간에 차가운 바닷속으로 침몰했습니다.
정부는 민간과 군인, 그리고 미국, 영국, 호주 등 외국 전문가들까지 참여한 '민·군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몇 달간 과학적이고 철저한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해저에서 수거한 어뢰 추진체 부속품과 선체의 변형 형태 등을 분석한 결과, 천안함은 북한 소형 잠수정에서 발사된 어뢰(CHT-02D)의 감응 폭발에 의해 피격된 것으로 명백히 밝혀졌습니다.
이 참사로 인해 천안함에 탑승하고 있던 자랑스러운 우리 장병 46명이 전사했습니다. 또한, 실종자 구조 작업을 벌이던 중 구조 전문 베테랑인 한주호 준위가 준전시 상태의 악조건 속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순직하셨습니다. 북한은 지금까지도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며 오리발을 내밀고 있지만, 수많은 증거와 국제사회의 조사 결과는 이 사건의 주범이 북한 정권임을 똑똑히 가리키고 있습니다. 나라를 지키다 차가운 바다에서 스러져간 46+1명 영웅들의 이름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12. 민간인을 향한 무차별 포격, 연평도 포격전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 대한민국 국민들은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충격적인 장면을 실시간 뉴스로 목격하게 됩니다. 북한이 해상 영토가 아닌, 우리 주민들이 실제로 살고 있는 영토인 '연평도'를 향해 무차별 기습 포격을 가한 것입니다.
당시 연평도의 우리 해병대 제6해병여단 우도부대는 정상적인 방어 준비 태세 훈련인 해상 사격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군의 사격 훈련이 종료될 무렵, 북한군은 개머리 진지와 무도 진지 등에서 연평도 군부대와 민간인 거주 지역을 향해 122mm 방사포와 평사포 등 170여 발을 무차별적으로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대낮에 민간인 마을과 군부대에 포탄이 떨어지며 평화롭던 섬은 순식간에 불바다와 폭발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우리 해병대는 포탄이 떨어지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신속하게 K-9 자주포를 이용해 북한의 진지를 향해 강력한 대응 사격을 실시했습니다. 철모가 불타는 줄도 모르고 임무를 수행하던 해병대원들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기습적인 포격 도발로 인해 해병대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 등 영리한 젊은 군인 2명이 전사했고, 부대원 16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더욱 분노스러운 것은 민간인 거주 지역에도 포탄이 떨어져 민간인 근로자 2명이 사망하고 주민 3명이 다쳤다는 점입니다. 휴전 협정 이후 북한이 대한민국의 영토를 직접 포격해 민간인까지 사망하게 한 최초의 사건으로, 북한의 무모함과 잔인함이 극에 달했던 사건입니다.


13. 비무장지대에 묻어둔 음모, DMZ 목함지뢰 매설 도발 (2015년)

가장 최근에 발생한 대표적인 최전방 도발 사건은 2015년 8월 4일 아침, 서부전선 경기도 파주 지역 비무장지대(DMZ)에서 일어났습니다.
우리 육군 제1사단 수색대원들이 정상적인 수색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통문(철책 문)을 통과하던 중, 의문의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조사 결과, 북한군이 우리 군의 수색로를 치밀하게 관찰한 후, 우리 측 통문 바로 밑에 살상용 '목함지뢰' 3발을 몰래 내려와 매설해 둔 것이었습니다. 목함지뢰는 나무 상자 안에 폭약을 넣은 지뢰로, 금속 탐지기에 잘 걸리지 않는 아주 비열한 무기입니다.
이 비열한 지뢰 폭발로 인해 작전을 수행 중이던 하재헌 하사(당시)와 김정원 하사(당시)가 다리를 잃는 심각한 중상을 입었습니다. 다리가 잘려 나가는 극한의 고통과 혼란 속에서도, 수색대원들은 전우를 구하기 위해 침착하고 완벽한 작전 태세를 유지하며 전우를 신속하게 봉송해 추가 인명 피해를 막았습니다.
이 사건은 북한이 군사분계선(MDL)을 불법으로 침범해 우리 수색로에 지뢰를 매설한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자 도발이었습니다. 우리 군은 이에 대한 보복 조치로 최전방 지역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격 재개했고,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다가 남북 고위급 접촉을 통해 북한이 유감을 표명하면서 사태가 일단락되었습니다. 두 영웅은 큰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군에 복귀하거나 사회에서 당당하게 활동하며 우리 국민들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지금까지 1950년 6·25 전쟁부터 2015년 DMZ 목함지뢰 도발까지,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북한의 주요 공격 역사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수많은 사건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명확한 사실이 있습니다. 북한의 도발은 시기와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군인뿐만 아니라 아무 죄 없는 민간인까지 그들의 타깃으로 삼았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일하고, 학교에서 공부하고, 가족들과 따뜻한 밥을 먹는 이 소소하고 평화로운 일상은 결코 공짜로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방에서, 해상에서, 하늘에서 밤낮없이 눈을 부릅뜨고 국토를 방위하고 있는 국군 장병들의 노고와, 먼저 가신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피와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안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언제든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옛 격언처럼, 우리는 과거 북한이 저지른 잔혹한 도발 역사를 똑똑히 기억하고 철저한 안보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이 글이 많은 분들께 우리의 아픈 역사를 되새기고, 안보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모든 영웅분들의 명복을 빌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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